샬롬 ~
늘 주보에 실리는 추천도서를 볼 때마다 읽어야지 하면서도 시간이 금새 지나버려 기회를 놓쳤는데
이번에는 꼭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교회에서 추천하니까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는 꼭 소감문을 나누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꼭 순종하고 싶다는 마음이 저를 이끌어 감사하게도
책도 읽고 소감문도 쓰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한주 두주 지나고 3주가 지나면서 기한이 다되어 문득 이번 도서가 뭐였지? 하고 떠오르면서
급하게 3가지 추천도서 중에서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라는 책을 선택하여 읽고 소감을 나누어 봅니다.
역시나 책이 주는 유익은 정말 크고 보람되고 감사했습니다.
[본것]
-저자의 솔직한 내면의 생각(부교역자가 신도 600명중 200명을 말없이 데리고 나갔어도 자신은 예수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속은 시커멓게 탔고 분노와 미움뿐 용서는 없었다. 욕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석공장인은 수습공부터 장인이 되기까지 10년에서 15년이 걸릴수 도 있다고하는데....
제자훈련은 겉모습만 멀쩡한 구멍 가득한 부실한 제자훈련이다.
-석공 분야에서 수습공에서 숙련공을 거쳐 장인의 단계까지 이르는 과정이 너무 느리고 고되다 보니 손에 꼽을 석공 장인이 많지 않다.
이런 석공 장인이 지은 건물은 혹독한 날씨에서도 몇 천 년을 버틸 수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세의 성들, 오늘날 잘 만들어진 농가 돌집등.
-정서적으로 건강한 제자훈련은 육중한 돌과도 같은 진짜 제자훈련으로 방향을 급선회하라는 강력한 촉구이다.
물론 그 과정은 힘들고 복잡하고 부담스럽다. 하지만 진정한 석조 건축물처럼 오랜 시간을 버티는 결과물이 탄생한다.
-제자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아기처럼’ 돌봄을 받는 바람에 영적 불구 상태로 전락한 사람들이 많다. 예수안에서 자유와 부함을
약속하는 신앙을 굳게 믿으면서도 실상은 철저히 비성경적인 방식에 갇혀 있다.
-감정적으로는 미성숙해도 영적으로는 성숙한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예수님께는 원수들이 영적 삶의 방해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더 깊은 교제를 경험하기 위한 통로였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을 강조했다.
-마르다는 꼭할일과 당장 급한일을 하느라 바빴고 의무에 온 신경을 쏟다 보니 예수님의 사랑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예수님의 발치 아래에 앉을 시간이 난다 해도 그녀는 여전히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녀의 삶이 정돈이 되어 있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는 예수님께도 해야 할 일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마리아)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리아의 영성은 예수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 그분과 ‘함께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슬로우’ 영성이었다.
-오늘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신자’이되 그분을 따르는 ‘제자’는 아닌 이들이 너무도 많다.
동시에 우리의 제자훈련은 성경을 통해 마음(정신)을 새롭게 하는 것을 강조하되 침묵과 고독과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 같은
성경적인 영성의 다른 주요 요소들에서 매우 약한 가분수가 되었다.
-급진적인 결단을 내리라 ‘외적 활동보다 내적 삶이 우선’이라는 원칙을...
-3세기-5세기 사막교부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 이집트의 사막으로 들어가는 결단을 취했다.
(평민부터 황제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에게 지도와 지혜를 구하기 위해 사막으로 발걸음했다.
=궁전을 나와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간 아르세니우스는 똑같은 기도를 반복해서 드리자 이런 음성을 반복해서 들었다.
“도망치라. 침묵하라. 항상 기도하라. 이런 것이 죄 없는 삶의 원천이니라”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주된 목적은 격려의 말이나 인도하심 같은 뭔가를 얻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잠잠히 있는 것 자체가 기도이다.
-신앙의 목표가 매사에 하나님과 교제하며 종일 그분 안에 거하는 것임을 깨닫고 나자 “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의 목적은 단순히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있다.
-성무일도의 리듬을 실천하라. 성무일도(곧, 정시기도)의 목적은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는 모든 일을 멈추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리듬을 기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의 길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셨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눅 16:15).“미움”은 실로 강한 언어이다.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이 이 정도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너무 작거나 편협한 정도가 아니라 지독히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삶’에 고난과 실패와 교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도 포함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한다.
>>세상의 제자도
①인기를 얻으라. ②위대해지라 ③성공하라 ④고난과 실패를 피하라.
>>예수님의 제자도
①인기를 거부하라(나에게 인기를 얻으라 ②‘위대주의’를 거부하라(나에게 위대한 자가 되라)
③‘성공주의’를 거부하라(나에 대해 성공하라). ④고난과 실패를 받아들이라(내게 충성하라).
-예수님처럼 우리도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질문1.내 계획과 꿈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그것들이 선을 넘어 스스로 위대해 지려는 욕심으로 변질되었는가?
-질문2.어떻게 하면 낮은 사람들과 함께 낮아지고 작은 사람들과 함께 작아질 수 있을까?
-성공주의에 빠진 우리는 베드로와 별반 다르지 않게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예수님의 마음에서 철저히 어긋난 방식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오늘날의 우리처럼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피하거나 부인했다. 그들은 자신이 약함과 고난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십자가는 그들에게 수치였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 종교 생활의 “트레이드마크는 ‘긍정적인 생각’과 회피이다.
-약함이라는 하나님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자신을 돌보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챙길 수 있도록 내 계획과 활동을 제한한다.
몸이 으스러지더라도 해내고야 만다는 아집을 버린다.
=갈등이 있어도 없는 척하지 않고 갈등을 진지하게 다루어 예수님처럼 진정한 평화를 추구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어마어마한 수의 제자들의 대량 이탈 사태를 겪으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5천 명이 배불리 먹는 기적이 일어난 뒤 구름떼 같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으나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라는 가르침이 시작되자 얼굴을 붉히며 몸을 돌리는 사람이 나타났고 수천명이 그분을 버렸다.
겨우 12명만 남았다.
-수천 명이 등을 돌리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주권과 계획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긴장을 풀고 쉬셨다.
-한계라는 선물을 이해하면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된다.
-다윗은 왕좌를 차지했다고 쾌재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가졌다.
그는 한시대를 풍미한 거인들을 잃은 슬픔을 아름다운 노래로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슬픔에 관심을 기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온 유다 백성들에게 애통하는 법을 배우도록 명령했다.
-당신의 교회에서 애통에 초점을 맞춘 예배를 드리거나 슬퍼하는 시간이 영적 성숙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친 적이 있는가?
성경에서 슬픔과 애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설교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용서하기 위한 ‘과정’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로 힘든 일임을 깨닫지 못했다.
섣불리 용서하는 이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성그하게 용서하려 한다. 그러나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다.
- [나-당신] 성육신 사건-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신 사건이며 나-당신은 내가 상대방의 입장을 입는 것이다.
나를 안고 상대를 입는 것이 아니다. 나를 죽이고 상대방을 입는 것이다.
하나님은 온전히 세상 속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인간을 향한 사랑을 보여 주는 데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판단하셨다.
-한방중에 겁에 질려서 깨어난 네 살배기 아이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아이는 어둔 방 안에 온갖 종류의 도깨비와 괴물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겁에 질린 채로 조르르 아빠 엄마의 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를 달래고 나서 손을 잡고 자기 방에 데려간 엄마는 불을 켜고 아이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마.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이 방에는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셔.“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알아요. 하지만 살아 있는 진짜 사람이 같이 있어 주면 좋겠어요.“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하나님이 되어 주어야 한다.
-성숙하게 말하기의 특징
예의있게. 말을 불쑥 내뱉지 말고 깊이 생각한 뒤에 말하라
솔직하게. 에두르거나 왜곡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말하라.
분명하게. 모호하고 알쏭달쏭하게 말고 원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말하라
때에 맞게. 특정 대화를 하기 더 좋은 때와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본보기를 보며 자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인간의 악한 계획은 하나님의 목적을 무산 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의도치 않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가 된다.
-우리가 고통과 실패를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무엇도 헛되이 낭비하시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우리의 본질적인 약함은 치유하거나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가장 큰 힘의 근원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진리들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이 진리들을 통해 깊은 변화를 경험하기를 원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교회에 또 다른 프로그램과 활동 하나를 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깨달은 것]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의 차이를 새롭게 배우며 내 자신이 마르다와 다르지 않음을 고백해 본다.
지금도 주님을 만나 자유를 누린다. 그리고 책을 통해 좀 더 표면적인 자유에서 내면의 긴장된 근육이 느슨해지는 평안함을 얻게 해주었다.
약함이 귀한 것임을 알게 되어 기쁘다. 감사하다. 약함이 너무 많은 삶이기에.
[적용할 것]
성육신의 경청을 실천하라.
그동안 나와 모든 관계 속 소통에 나는 나였고 상대는 상대였다. 나로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나라는 필터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였다. 성육신의 경청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의 세상으로 오기 위해 인간의 옷을 입으신 것처럼
상대방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도록 노력하겠다. 조금씩.
신학자 데이비드 아우구스버거의 경청에 대한 정의처럼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은 상대방을 사랑해 주기 위해
서로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가까이 다가가는 행동“으로 노력하겠다.
끝으로
책 내용은 한자 한자 다 좋았다. 그리고 나는 진도가 느려서 애를 먹었다. 앞 부분의 좋은 내용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책을 읽을 기회를 얻은 것도 감사하다.
읽는 내내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역하기 전 사막으로 한 3년 인가를 들어갔던 말씀이 기억이 났다.
나 역시 그런 갈급함이 있었다. 말씀을 읽어야 하는 데, 기도해야 하는 데..하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지 않은 채
머릿속의 지식으로만 신앙 생활을 했던 것을 모른 채 하며 살았다. 결국 그런 상황은 가장 가까운 소중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지 못하고 나를 내세우며 이기와 비판을 나누고 강요했던 부끄러움을 고백해본다.
그리고 힘을 얻어 하반기를 나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기쁘다.